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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책 추천 - 갈등하는 번역

Colson_Kim 2021. 7. 2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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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책 추천 - 갈등하는 번역

 

좋은 글과 좋은 번역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글쓴이는 말합니다. 번역하기와 글쓰기의 원리는 같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썼다면, 다시 말해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좋은 글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마주하는데, 크게 세 가지 문제점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 단어 수준의 번역 문제들, 2) 문장 수준의 번역 문제들, 3) 담화 수준의 번역 문제들입니다. 글쓴이는 「갈등하는 번역」에서 이 세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뼈대로 상세히 설명합니다.

 

먼저, '단어 수준의 번역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보통 단어 수준에서 번역 문제를 마주하면 사전을 통해 해결합니다. 하지만 말이나 글에서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고 인식하는 낱말은 단어가 아니라 어휘입니다. 단어는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의 최소 단위지만 어휘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어휘집'안에 패턴화되어 저장된 의미 단위로써 사람들의 언어 사용 패턴을 관찰하여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번역가는 원문에 선택된 낱말 역시 모두 단어가 아니라 어휘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어휘는 무엇을 기준으로 번역해야 할까요?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또 번역자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메시지의 목적'이 번역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단어 선택의 판단 기준이 됩니다.

 

모든 단어는 그 단어가 쓰인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맥락이며 글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번역가는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그러한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어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문장 수준의 번역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모든 '의미'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자유는 언어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의미 전달에서 출발한 커뮤니케이션은 언어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문법으로 포장됩니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문법'입니다. 이는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문법이라는 그릇은 언어에 따라 달라지고 언어가 다르다는 말은 곧 문법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결국 번역이란, 이 그릇에 담긴 의미를 저 그릇으로 최대한 온전하게 옮기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그릇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어떤 내용물을 담아야 하는지 선별하는 기준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묘하게 다른 기준을 알지 못하고 원문에 실린 동사의 의미 범주 안에서만 적절한 번역어를 고르려다 보니 규범에 어긋나는 어색한 한국어 문장이 나오게 됩니다.

 

한국어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들려면 언어 대 언어로 번역하는 원문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언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한국어에서는, 한국 사람이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고 이 문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달성하고자 하는 의사소통의 기능이 무엇인지, 어떤 의도로 발화된 것일지 고민하여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담화 수준의 번역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전체 메시지를 텍스트 또는 담화라 부르고 작은 메시지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를 절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텍스트는 절이 일렬로 순차적으로 이어져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모든 절은 궁극적으로 전체 메시지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절과 절, 문장과 문장이 놓이는 순서는 절대 우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절과 절의 구체적인 결합관계에는 표층결속성, 심층결속성, 주제 구조와 정보 구조가 있습니다.

 

문제는 절을 구성하고 연결하는 방식이 언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활용할 수 있는 어휘 목록과 문법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메시지 전개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번역물마다 번역 행위를 촉발하고자 하는 목적은 저마다 다릅니다. 번역 목적이 다르다는 말은 목표 독자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텍스트 유형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결국,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목표 독자를 바꾸는 작업입니다. 다시 말해 번역이란 가상 독자를 바꿔 글을 다시 쓰는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번역가는 도착 텍스트만으로도 완벽한 텍스트 결속성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갈등하는 번역」 윤영삼 글쓴이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2003년 출판 번역 프리랜서로 나섰습니다. 번역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면서 번역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영국 버밍엄대 대학원에 진학해 번역학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출판기획, 편집, 저술, 강의, 기술번역 등 번역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병행하며 다양한 '번역 행위자'로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지금까지 약 40권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글쓴이는 번역 공부를 위해 '번역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몇 권 사서 읽었고, '번역 가이드'를 통해 전문 번역가들이 10년 이상 번역을 하며 터득한 비법들을 단시간에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번역계의 고수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된다'라고 제시하는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자질 부족을 탓했지만 조언들 사이에는 삐걱거리는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 번역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번역을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처음부터 '글쓰기나 번역하는 데 원칙 같은 것은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말이든 글이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따라 그 형태가 선택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번역 가이드와 글쓰기 책들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책들이 자칫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초심자들을 엉뚱한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처방들, 혼란스러운 규칙들만 좇다보면 정작 글쓰기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해선 고민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글쓴이는 이 책을 통해서 '더 나은 번역의 특성은 어떠할까'라는 귀납적 접근을 통해 글쓰기/번역하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인코딩하고 디코딩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메시지(텍스트)가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려준다. 다시 말해,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은 텍스트가 아니라 송신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해'다. 송신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해'가 수신자의 머릿속에 그대로 전달되면 텍스트의 형태가 어떠하든 커뮤니케이션은 성공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행위의 성패는 '송신자의 이해와 수신자의 이해가 얼마나 유사한가'로 판단할 수 있듯이, 번역도 마찬가지로 '원저자의 의도를 목표 독자가 얼마나 이해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상적인 번역자라면 출발 언어를 디코딩하는 능력과 도착 언어를 인코딩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험세계와 독자의 경험세계를 모두 공유해야 한다.

번역을 왜 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달라질 것이고, 수신자도 달라질 것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협력한다는 측면에서 번역 전략은 달라질 것이고 결과물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좋은 번역을 판단하는 기준은 원문 충실성이 아니라 번역문이 번역 행위의 목적에 얼마나 부합하느냐, 다시 말해서 중재를 잘했느냐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번역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다가 「갈등하는 번역」을 만났습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여러 번역책을 읽어봤지만 대부분 단어와 문장 차원에서 번역투를 없애고 한국어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이 대다수였습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방법론에서 벗어나 글쓰기의 본질에서 번역하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번역이라는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저자의 의도를 알고자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고 도착 문화에서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갖는지 고민해야 하며 이를 목표 독자에게 어떻게 하면 눈높이에 맞게 전달할 수 있는지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언어적 지식뿐만 아니라 저자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기초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습니다.

 

번역과 글쓰기는 말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직접 번역을 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번역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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